“지금도 보고 싶죠”...북한에서 넘어온 학도병의 기억
6·25 한국전쟁이 일어난지
70년이 흘렀습니다.
당시 참전했던 학도병들은
어느덧 백발의 노인이 됐는데요,
18세 나이로 강제로 인민군이 된 뒤
극적으로 탈출해 대한민국 국군으로 입대해
전쟁에 큰 공로를 세운
박성남 유공자를
정학순 기자가 만나봤습니다.
평안북도 삭주군이
고향인 박성남 할아버지.
그가 학업의 꿈을 갖고
학교에 처음 발을 들인 건
18살 때였습니다.
<입학과 동시에 6·25 전쟁 발발에 학도병으로 참전>
하지만 입학과 동시에
그에게 주어진 건
교복이 아닌 군복과
연필 대신 총자루가
쥐어졌습니다.
<인터뷰> 박성남 / 6·25 참전 유공자
“3일만에 학교에서 비상소집해서 신체 건강하니까 1차적으로 나온거지, 강원도에서 교복 벗고 군복 갈아입고, 한 일주일 정도 기초 군사 설명듣고...”
<인민군으로 참전한 박성남 유공자>
가족과 생이별 후
남침 행군 대열에 휩쓸렸고,
인민군 전선지구사령부 소속
위생병으로 강제 참전했습니다.
전라남도 나주로 끌려온 그는
그곳에서 수많은 시체와
피내음을 맡으며
동족상잔의 비극을 실감했습니다.
<극적으로 탈출했고, 대한민국 국군으로 입대>
그러던 중 UN군의
인천상륙작전이 성공으로
부대가 사라지며
산 속에 숨어있길 40여일.
발 닫는 곳이면 무작정
도망가기에 바빴다는 그는
지인의 도움으로
보은에서 가호적을 받았고,
국군에 입대할 수 있었습니다.
<인터뷰> 박성남 / 6·25 참전 유공자
“북진 중이니까 평양 지나서 쭉 가고 있으니까 앞으로 한달 이내 통일되니까 마음 놓고 여기 있어라, 이런 식으로 보호해준거죠.”
<현지 사정에 능통해 적 교란 작전 등의 임무 수행>
육군본부 직할 특수부대인
9172 부대에 배치된 그는
현지에 능통하다는 점을 활용해
적 후방 교란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
길었던 군생활을 마쳤습니다.
박성남 유공자는 전쟁이 발발한지
70년이 지났지만
지금도 참혹했던 그 날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.
<인터뷰> 박성남 / 6·25 참전 유공자
“6.25가 돌아오면 우리 세대에는 항상 그때를 생각하게 되요. 그래서 많은 전우들 죽는 걸 옆에서 보고, 3년 간 전쟁에서 죽지 않고 여태까지 왔다가 오래 살다보니까 오늘 이 자리까지 온거죠.”
hcnnews 정학순입니다. (임헌태)